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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이중희
아쉬웠던 역사의 순간들(원고 입니다) 첨부파일 :
지난 휴일에  책을 뒤적이던 중 재미있는 한국의 근 현대사를 만나게 되어 몰두하다 보니 너무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게되는 순간순간을 만나게 되고,

그 당시의 집권세력이 국가와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었는지가 의심이되고 왜 이래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 역사적 순간을 만나게 되어 이 글을 써본다.

김대중정부에서 국정원차장을 지냈고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L모씨가 언론인터뷰를 통해 발표한 내용에는

" 국정원이 1999년 버마 아웅산테러로 구속수감중이던 북한 공작원 강민철의 국내 송환을 추진했었고 버마정부도 풀어줄 의사를 표명했지만 김대중정부가 햇볕정책에 걸림돌이 될 염려가 있다고 판단해 성사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민철은 다른 공작원 2명과 함께 1983년10월 9일 버마의 아웅산 국립묘지에 폭탄을 설치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수행중이던 부총리,외무장관,상공부장관,동자부장관들과

대통령비서실장, 청와대 경제수석등의 당시로는 이 나라의 큰 기둥들이었던 인재들이 17명이나 폭살되어 생명을 잃었었고 버마인 4명이 폭살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었다.

강민철은 버마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사형집행 보류상태로 25년을 복역하다 2008년 5월 53세의 나이로 간암으로 사망하게 된다.

폭탄이 터진 시점이 전두환대통령이 아웅산국립묘지에 도착하기 직전이어서 대통령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L씨에 따르면 강민철은 1998년 주 버마 한국대사관 직원이 면회하면서 끈질기게 설득하자 테러전모를 털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 국정원은 강민철을 한국으로 데려 오거나,제3국에라도 보내기 위해 버마정부와 접촉해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 냈지만 김대중정부의 반대로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강민철은 테러 후 도주하다가 버마 군경에 포위되자 수류탄을 던지려고 안전핀을 뽑는 순간 수류탄이 터지는 바람에 왼쪽팔이 잘려나간 상태에서 체포되었다.

강민철은 면회간 한국대사관 직원에게 말하기를 "도주를 돕기로한 안내자가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았고 수류탄이 안전핀을 뽑고 손잡이를 잡고 있었는데도 터진것은 조국이 나를 죽이려 한 것이라며 북한을 원망했다"고도 했다.

L씨는 그 당시 북한도 남한도 강민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고 하며 "강민철은 분단 상황의 희생자"라고 했다.

만일 강민철이 한국으로 송환되어 자신이 저지른 테러에 대해 사실대로 증언할 기회가 이루어 졌다면 북한이 "아웅산테러는 남한이 저지르고 날조한것" 이라는 거짓주장을 지금까지 계속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시 김대중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만 집착되어 있지않고 역사의 진실을 증언할 증인은 어떻게든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더라도 그를 최소한 제 3국에 피신시켜 놓는 대책정도는 세웠을 텐데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의문이 생기는 이야기다. 햇볕정책의 그늘 아래 가려져 있던 어두운 역사의 한 장면을 다시 보는 듯 하다.

김현희를 살려놓은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포천신문 발행인
포천문화원 부원장
한국정책개발원 경기도지회장

이  중  희.


2017-03-24

아쉬웠던 역사의 순간들(원고 입니다)(현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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