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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김창호
효와 인간 개벽이 새 시대의 희망 첨부파일 : 효와 인간 개벽이 새 시대의 희망.hwp


효와 인간 개벽이 새 시대의 희망


                                                     김창호

최근의 선거과정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철학과 문화의 존재가치는 작게는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의 문제에서부터 크게는 한 국가의 나아갈 좌표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가 정치적 행위를 수행할 때는 반드시 자신의 가치관에 입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과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에서 알 듯 어려서 부터의 인성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안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총체적인 문제의 해결 방안은 인성교육 더 나아가 인간개벽에서 찾아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지도자에게 있어 국가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어떤 형태의 사회, 어떤 종류의 삶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를 판단하는 문제는 이미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는 부분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정치지도자와 그를 선택하는 국민의 가치관에 속하는 부분, 즉 문화마인드의 영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인에게는 창의倡義정치, 기업가에는 인성경영 창의倡義경제가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19세기초 이해조 선생님과 춘원 이광수 선생님의 계몽주의 문학보다 격상된 인성마케팅으로 인간개벽을 이루어 내어야 할 때입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오줌싸개 아이상”으로 더 잘 알려진 '오줌누는 소년' 동상은 벨기에 뿐만 아니라 유럽 최대 명소라고 합니다.  벨기에를 찾는 관광객 대부분이 이 동상을 보러 새벽부터 몰려든다고 합니다.   별것도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겨우 50㎝밖에 안 되는 동상이 한 해 7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인성이 기본이 된 문화마인드가 있는 지도자들의 정책 때문입니다.
 
폭설 속에서 죽어가던 아버지를 찾아 나선 한 소년이 오줌을 싸서 그 온기로 얼어붙은 아버지를 살려냈다는 이야기를 가진 가치를 상품화 시키고, 이를 유럽의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많은 유럽인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효의 가치가 담긴 문화 유적이 없는 것일까요?  문화 상품을 만들고자 하는 정치와 행정이 없는 것일까요?
 
중종실록에 의하면  한성부 판윤 김안국(金安國)은 생원 서경덕(徐敬德)19406)과 유학(幼學) 유인선(柳仁善)19407) 을 천거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실록 홈페이지에 의하면 “[註 19406] 서경덕(徐敬德) : 성리학에 밝았고 또 부모의 상에 여막(廬幕)을 지어 3년을 지내면서 능히 성효(誠孝)를 다하여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註 19407]유인선(柳仁善) : 효도로 소문이 나서 정문(旌門)을 세웠다. “ 

이를 보면 김안국 선생님은 효를 여러 가치 중 으뜸으로 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에 유인선 효우비가 있는데, 포천시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자료에 의하면 “유인선(1492-?) 선생님은 1492(성종23년)  포천시 자작촌에서 출생했으며 자는 공숙 본관은 문화이다.  천성이 어질고 착해서 어버이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고, 돌아가신 뒤에도 묘 앞에서 초려를 세워 3년간 시묘했다.
 
또한 친5형제가 한집에 살면서 형제간의 우애 또한 뛰어나 1549(명종4)년에는 효우정려를 내린 바 있다.  집안에 있던 우물도 당시 효우정(孝友井)이라 불렀는데 현재 없어져 효우비만 전해질 뿐이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효의 가치가 담긴 문화 유적이 이것뿐일까요?  인성을 소중히 여기며 문화 상품을 만들고자 하는 행정가와 미디어가 없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더불어 경기도 포천시 축석령의 오백주 선생님과 범바위를 '오줌 누는 소년' 동상과 비교해 보면 어느 것이 더 상품 가치가 있는지요?
 
포천시 축석령과 관계 된 설화를 소개한 포천시청과 포천문화원 홈페이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오백주 〔1643(인조21)~1719(숙종45)〕선생의 본관은 보성(寶城)이고, 자는 국경(國卿)이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성실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활을 잘 쏘아 잡은 짐승으로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다.”고 합니다.

1659년(효종10) 무과에 급제하였는데 시험관 유혁연이 15회를 쏘아 15회 백중하는 것을 보고 탄복하였다고 합니다. 별군에 배치되었는데 대장군이 여러 부하들에게 화살 하나로 표적을 꿰뚫을 사람이 있으면 크게 포상하겠다 하니 오선생이 즉시 화살 하나로 표적을 꿰뚫어 명성을 떨쳤습니다. 재주가 뛰어나고 충직하며 청렴결백하여 신망을 얻었고 주군절제도위를 거쳐 귀성부사에 이르렀습니다.

벼슬 때문에 고향을 떠나 있던 어느 해 겨울 부친이 위독하다는 급보를 받고 집에 돌아와 보니 병환이 매우 위중한지라 명의를 찾아가 약을 지어 정성껏 다려 올렸으나 차도가 없어 또 다시 다른 의원을 찾아가 약을 구하여 올렸으나 역시 차도가 없자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며 나의 정성이 부족하여 아버님 병환이 낳지 않는 것이라고 울부짖으며 영약을 찾아 매일같이 다녔는데 어느날 밤 꿈에 신령이 나타나 너의 아버지 병환은 산삼을 석청에 재어 복용하여야 치료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산삼이나 석청은 참으로 구하기 어려운 것인데 항차 눈이 쌓인 엄동에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백주 선생은 정성을 다하면 구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갖고 다음 날부터 높은 산 깊은 골짜기를 누비며 다녔습니다. 이러하기를 여러날 지났으나 약을 구하지 못하고 부친의 병환은 깊어만 가고 있으니 안타깝고 두렵기 그지없었다고 합니다.

내 정성이 부족하여 약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부친을 위하여 약을 얻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얼마 전에 현몽한  신령님이 나타나 어느 곳을 지나 어느 산 고개에 가보면 큰 바위가 있을 것이라며, 그 바위 근처에 가서 찾아보면 산삼과 석청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지라 “신령님 고맙습니다.”하고 그곳을 찾아가 보니 큰 바위 위에 큰 호랑이가 지키고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오백주 선생은 당황하지 않고 “아무리 짐승이라 하지만 나의 효를 방해할 수 있겠는가. 아버님 병환을 고치기 위하여 이곳에 약을 구하러 왔는데 방해 말라.  네가 나를 잡아먹고 싶으면 내가 약을 구하여 아버님 병환을 고치게 한 후 나를 잡아먹으라.”하고 범을 바라보니 범은 간데없고 바위만 있는지라 선생은 신령님 신령님 고맙습니다.

산삼과 석청을 구하게 하여 달라고 애원하니 어디선가 벌 소리가 들려오는지라 소리 나는 곳을 찾아 따라가 보니 벌이 바위 틈 조그만 구멍으로 들어가는데 구멍가에 석청이 묻어있어 반가워 그 구멍에서 석청을 파내고 그 앞을 자세히 살펴보니 또한 산삼의 마른대가 보여 산삼을 캐가지고 돌아와 아버님께 드려 병환이 나았다고 합니다.

이는 효성이 지극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 후 이 고장사람들은 이 바위를 범바위 또는 효자바위라 불렀으며 효자 오백주 선생이 이 바위에서 빌어 약을 얻었다고 하여 축석(祝石)이라 하고 축석이 있는 고개를 축석령(祝石嶺)이라 불렀다 합니다.

조정에서는 이 사실을 살펴 1723년(경종3) 오백주 선생에게 효자정문을 내려 그 효성을 기렸습니다.  효자정문은 포천시 어룡동에 있습니다. 오백주 선생이 아버님의 병환을 고쳐드리기 위하여 산삼과 석청을 얻게 해 달라고 빌었다고 전해지는 범바위 혹은 효자바위는 축석령 호국공원(護國公園)에 놓여 있는데 이 전설의 바위는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묻히게 돼 이 마을 사람들이 이 효자바위가 묻혀서는 아니 되겠다하여 1994년 3월 후손들의 협조를 받아 현 위치에 옮겨 놓아 효의 상징으로 삼게 하였다고 전합니다.
 
위 내용도 한번 '벨기에의 오줌 누는 소년'과 비교해 주세요.  정말 수도권 규제 등 때문에 경기도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일까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수도권 규제 등의 탓을 하는 그 마인드와 인성이 부족한 행동 때문에 경기도의 경쟁력을 떨어 뜨려 대한민국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욱이 독일보다 통일도 늦어지고요.
 
700만명이 아니라 7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할 자원을 방치하고, 그 자원을 농촌관광의 메카로 만들려는 활동을 외면하는 정치와 행정 때문은 아닐까요?  교육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성이 부족한 이들의 정치와 행정 그리고 기업경영 등 때문이 아닐까요?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 판단해 주세요.

분명 지금처럼 현대인들로부터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점점 외면 받고 나면, 인간이 자아를 찾아 영유해 나아가는 일은 문화와 예술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 필요한 인재상은 이명희-조현아 모녀 사태에서 보듯 인성교육이 된 인간과 인성 마케터일 것입니다.  지금은 분명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봉인암(봉영사)을 창건하신 김서현 할아버지와 같은 인성교육을 통한 흥무대왕 김유신 태대각간·문명황후 남매와 같은 인재를 양성하는 인간개벽이 희망인 시대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창호

군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밴쳐비지니스 연구과정 수료
포천문인협회 사무국장 및 이사 역임
포천예술 편집위원과 포천문화 편집위원 역임
마홀문학회 회장 역임,  현 광릉21포럼 대표
저서
   2인시집 “너랑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내겐 천국이었어” 학영사
   소설집 “광릉숲” 등이 있음
cafe.daum.net/k255 2018-06-14

효와 인간 개벽이 새 시대의 희망(현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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