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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전국한시백일장 개최 안내
 
 
첨부파일 : 제19회 전국한시지상백일장 개최요강.hwp
 
第19回 全國漢詩紙上白日場 開催

= 逝世 300餘年 吳伯周 先生 武勇과 孝行 追慕 =


  하늘에 치솟는 孝誠과 太陽을 가리는 忠誠으로 平生을 一貫하신 吳伯周 先生은 武人으로서 武科에 及第하여 別軍에 배치되었고, 折衝將軍, 嘉善大夫에 오르고 龜城都護府使를 비롯하여 지방수령을 여섯 차례나 역임하였으며, 세상이 다 아는 아버님 病患과 生蔘과 石蜜, 그리고 호랑이와 결부된 祝石嶺 說話의 主人公이신 先生의 性品과 외길 忠誠을 기리고 追慕하고자 全國漢詩紙上白日場을 다음과 같이 開催하오니 江湖諸賢과 漢詩同好人 및 漢學者 여러분께서 多數 參與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 應 募 要 綱 -


□ 主 催 : 抱川文化院
□ 後 援 : 抱川市 · 抱川市議會 ·
           寶城吳氏門中 · (社)韓國漢詩協會 抱川支部
□ 詩 題 : 追慕 吳伯周 先生의 武勇과 孝誠
□ 押 韻 : 生.成.名.誠.榮.
□ 考選基準 : (社)韓國漢詩協會考選準則 準用
□ 考選試官 : 斯界 大家
□ 賞金內容
   ○ 壯元   一人 : 賞金 壹百萬원
   ○ 次上   一人 : 賞金 五拾萬원
   ○ 次下   二人 : 賞金 各 三拾萬원
   ○ 參榜   十人 : 賞金 各 二拾萬원
   ○ 佳作 二十人 : 賞金 各 壹拾萬원
   ○ 吳伯周賞 十人 : : 賞金 各 壹拾萬원

□ 原稿磨勘 : 2021年 9月 10日(金) 도착분까지
□ 接受處  
     - 경기도 포천시 중앙로 34번길 8 포천문화원 사무국(우:11149)
     - E-mail : pc5015@naver.com
     - Fax : 031-536-1020
□ 入選者 發表 : 2021년 10月 初旬
   (入選者 個別通知 및 文化院 홈페이지 揭載)
□ 施賞日程 : 2021年 10月 中旬 (追後 案內)
□ 問議處 : 포천문화원 사무국 ☎ 031-532-5015, 5055
□ 其他事項 : ※ 出品作은 主催側에 歸屬되며 成冊 後에 個別 郵送함.
              ※ 施賞金은 源泉徵收金을 控除하고 計座移替 함.
              ※ 提出한 詩紙는 原本 그대로 漢詩作品集 印刷할 豫定.
              ※ 詩稿는 1人 1作品으로 限定함.

抱川文化院長  楊  潤  宅




오백주(吳伯周)·1643(인조21)~1719(숙종45)



  선생의 본관은 보성(寶城)이고, 자는 국경(國卿)이다. 할아버지는 증참판경춘(贈參判慶春)이고 열녀정문(烈女旌門)을 받은 문화유씨(경춘의 어머니)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증한성부윤(贈漢城府尹) 만(晩)이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성실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활을 잘 쏘아 잡은 짐승으로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1665년(현종 6)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는데 시험관 유혁연(柳赫然)이 15회를 쏘아 15회 백중(百中)하는 것을 보고 탄복하였다고 한다.
  별군(別軍)에 배치되었는데 대장군이 여러 부하들에게 화살 하나로 표적을 꿰뚫을 사람이 있으면 크게 포상하겠다 하니 오선생이 즉시 화살 하나로 표적을 꿰뚫어 명성을 떨치었다.
  재주가 뛰어나고 충직하며 청렴결백하여 신망을 얻었고 주군절제도위(州郡節制都尉)를 거쳐 구성도호부사(龜城都護府使)에 이르는 등 무관(武官)으로서 지방수령(地方守令)을 여섯 차례나 역임한 인물이다.
  벼슬 때문에 고향을 떠나 있던 어느 해 겨울 부친이 위독하다는 급보를 받고 집에 돌아와 보니 병환이 매우 위중한지라 명의를 찾아가 약을 지어 정성껏 달여 올렸으나 차도가 없어 또 다시 다른 의원을 찾아가 약을 구하여 올렸으나 역시 차도가 없자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며 나의 정성이 부족하여 아버님 병환이 낫지 않는 것이라 울부짖으며 영약(靈藥)을 찾아 매일같이 다녔는데 어느 날 밤 꿈에 신령이 나타나 너의 아버지 병환은 산삼(山蔘)을 석청(石淸)에 재어 복용하여야 치료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용주(龍州) 조경(趙絅) 선생께 문의하였다는 말과 미수(眉叟) 허목(許穆) 선생께 문의하여 처방(處方)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산삼이나 석청은 참으로 구하기 어려운 것인데 항차 눈이 쌓인 엄동에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던 오백주 선생은 정성을 다하면 구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갖고 다음 날부터 높은 산 깊은 골짜기를 누비며 다녔다. 이러하기를 여러 날 지났으나 약을 구하지 못하고 부친의 병환은 깊어만 가고 있으니 안타깝고 두렵기 그지없었다. 내 정성이 부족하여 약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부친을 위하여 약을 얻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얼마 전에 현몽한 신령님이 나타나 어느 곳을 지나 어느 산 고개에 가보면 큰 바위가 있을 것이다. 그 바위 근처에 가서 찾아보면 산삼과 석청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지라 “신령님 고맙습니다.”하고 그곳을 찾아가 보니 큰 바위 위에 큰 호랑이가 지키고 앉아 있었다. 오백주 선생은 당황하지 않고 “아무리 짐승이라 하지만 나의 효를 방해할 수 있겠는가. 아버님 병환을 고치기 위하여 이 곳에 약을 구하러 왔는데 방해말라. 네가 나를 잡아먹고 싶으면 내가 약을 구하여 아버님 병환을 고치게 한 후 나를 잡아먹으라.”하고 범을 바라보니 범은 간데없고 바위만 있는지라 선생은 “신령님 신령님 고맙습니다.”
  산삼과 석청을 구하게 하여 달라고 애원하니 어디선가 벌 소리가 들려오는지라 소리 나는 곳을 찾아 따라가 보니 벌이 바위 틈 조그만 구멍으로 들어가는데 구멍가에 석청이 묻어있어 반가워 그 구멍에서 석청을 파내고 그 앞을 자세히 살펴보니 또한 산삼의 마른대가 보여 산삼을 캐가지고 돌아와 아버님께 드려 병환이 나았다고 한다.
  이는 효성이 지극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그 후 이 고장 사람들은 이 바위를 범바위 또는 효자바위라 불렸으며 효자 오백주 선생이 이 바위에서 빌어 약을 얻었다고 하여 축석(祝石)이라 하고 축석이 있는 고개를 축석령(祝石嶺)이라 불렀다.
  조정에서는 이 사실을 살펴 1723년(경종3) 오백주 선생에게 효자정문을 내려 그 효성을 기렸다. 효자정문은 포천 어룡동에 있다. 오백주 선생이 아버님의 병환을 고쳐드리기 위하여 산삼과 석청을 얻게 해 달라고 빌었다고 전해지는 범바위 혹은 효자바위는 축석령 소공원(小公園)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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