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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시의 설화

  인물담

   

[무명인물(無名人物)]

   효(孝)와 열(烈)    착한 마음씨   지혜와 꾀    바보(어리석음)    힘과 용기    기타


1. 효(孝)와 열(烈)


(1) 아버지 원수 갚은 효자

옛날에 아들 하나 만 데리고 사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아들이 커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는 왜 아버지가 없어?”
“네 아버지는 산에 갔다가 호랑이한테 물려 죽었단다.”
“그러면 내가 호랑이를 잡아서 우리 아버지 원수를 갚을 테야.”
그러고 아이는 혼자서 산으로 올라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조그마한 오두막집에서 불이 반짝반짝했다. 그 집에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너 어떻게 여기에 왔느냐?”
“우리 아버지가 산에 오신 걸 호랑이가 잡아먹어서, 아버지 원수를 갚으러 왔습니다.”
“응, 그러면 여기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라.”
할아버지가 새끼를 꼬더니, 망태기를 만들어 아이를 그 안에다 쏙 집어넣었다. 그렇게 해서 망태기를 낭떠러지에 있는 큰 나무 꼭대기에다 매달아 놓았다.
한밤중이 되자, 호랑이들이 거기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모여들었다. 그러나 나무에 오르지 못하는 호랑이들은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고 뛰어오르다가 그만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죽어버리곤 했다. 한참 후에 할아버지가 올라와 망태기를 끌어 내려주었다. 내려와서 보니 호랑이가 낭떠러지 밑에 수북하게 죽어 있었다. 그래서 그 호랑이 껍데기를 벗겨다 팔아서 부자가 됐다.
어느 날 한 이웃이 찾아와 어떻게 부자가 됐느냐고 물어, 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도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산으로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가 새끼를 꼬아 망태기를 만들어 들어가라고 하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할아버지, 나는 쏙 집어넣지 말고 모가지만 내놔 줘요.”
했다. 그렇게 해서 나무 꼭대기에 매달아 놨다. 이윽고 밤이 되자 무서운 호랑이들이 와서 으르렁대고 여기저기 뛰어 다녔다. 호랑이를 보고 놀란 이웃 사람은 움직이다가 그만 망태기가 벗겨져 땅에 떨어져 죽어버렸다고 한다.
< 대진대 국문과 제4차 답사 자료집(일동면, 이동면), 1995. 9. >


(2) 거인을 물리친 효자

옛날 어느 마을의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거인에게 잡혀갔다.
한편, 집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아들이 그 아버지를 찾으러 산으로 떠났다. 아들은 며칠을 두고 헤맸으나, 자기 아버지를 찾을 길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 여러 날을 굶고 보니, 배도 고프고 기운도 지쳐서 어느 산비탈에 쓰러져 그만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빈대 한 말과 벼룩 한 말과 바늘 한 말을 준비해서 아버지를 찾아라’라고 했다. 참으로 신기한 꿈이었다.
아들은 잠이 깨자, 용기를 내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며칠 사이에 빈대와 벼룩과 바늘을 각각 한 말씩 준비해 가지고, 다시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해가 저물어 어느 산골짜기에 있는 집으로 찾아 들어가니, 그 집은 빈집인지 아무도 없었다. 마침 큰 광이 있었는데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밤중이 되자 갑자기 마당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더니,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거인 하나가 뚜벅뚜벅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거인을 보고 기겁을 한 아들은 얼른 벼룩 한 말을 방에다 풀어놓고는 벽장으로 가 숨었다. 이윽고 거인이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벼룩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툴툴대더니 마루로 나가 누웠다. 이 때 아들은 벽장에서 나와 몰래 빈대 한 말을 풀어놓았다. 그러자 거인은 또 툴툴대며 마당가 숲에 가서 누웠다. 아들이 또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가서, 이번에는 바늘 한 말을 풀어놓았다. 그러자 거인은 따갑다고 툴툴대더니, 이번에는 솥을 열고 솥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을 보자 아들은 ‘옳지 됐다’ 하고는, 커다란 바위덩이를 들고 와 솥뚜껑 위에 얹어 놓고 밑 아궁이에다 장작불을 지폈다. 이리하여 힘이 센 그 거인은 마침내 타 죽고 말았다.
이튿날 날이 밝자, 아들은 광문을 부수어 열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광속에는 자기 아버지와 여러 사람들이 새끼줄에 묶여 있었다. 이리하여 아들은 자기 아버지와 여러 사람을 풀어서 구해 주고, 또 그 광속에 쌓여 있던 온갖 보물들을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 抱川郡誌, 1984. >


(3) 아버지를 도로 살린 효자

옛날 어느 마을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런데 이 동네에 사는 어느 한 사람이 활을 메고 호랑이 사냥을 나갔다. 그는 집을 나갈 때 바늘을 꽂아 놓고 가며, ‘그 바늘에 만약 녹이 슬면 죽은 줄 알라’고 일러두고 갔다. 그는 호랑이를 찾아 며칠을 헤매다가 마침내 호랑이의 굴을 발견했다. 그 때 호랑이는 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 사람은 호랑이를 보자 금방 활을 당겼다. 그러나 화살이 빗나가고 말아서, 도리어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
한편 이 사람의 집안에서는 며칠을 기다려도 사냥을 나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자, 혹시나 하고 꽂아둔 바늘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 이게 웬일인가? 그 바늘이 새까맣게 녹슬어 있었다. 사냥 나간 사람에게 무슨 큰 변고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 사람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아들은 이 산 저 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두루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지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네 효성이 지극하고 네 아버지 또한 동민을 위해서 착한 일을 했다’며 약병 세 개를 주었다. 그리고는 ‘네 아버지의 해골에다 노란 병의 약을 바르고, 그 다음에 빨간 병의 약, 그리고 맨 나중에 파란 병의 약을 바르면 다시 살아난다’고 했다.
아들이 소스라쳐 일어나니 과연 머리맡에 세 개의 약병이 놓여 있었다. 아들은 용기를 내어 다시 아버지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호랑이의 굴 앞에 이르렀다. 그 곳에 이르니 사람의 해골이 흩어져 있었다. 이것을 보자 아들은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는 그 해골을 주워 모아 사람의 형체대로 놓고는, 가지고 간 노란 병의 약을 그 해골에다 발랐다.
잠시 후에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해골에 살이 붙기 시작하더니 보통 사람의 살갗이 되었다. 아들은 다시 빨간 병의 약을 살갗에다 칠해 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이변이 일어났다. 온 몸이 따스해지며 피가 돌기 시작했다. 아들은 기쁨을 참지 못하며 마지막으로 푸른 병의 약을 다시 칠했다. 그랬더니 ‘흑’ 하고 자기 아버지가 숨을 토해 쉬며 일어났다. 이것을 보고 아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들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다 너의 효성이 지극해서 산신령이 돌본 것’이라며 기뻐했다. 그래서 그들은 힘을 합하여 호랑이를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부터는 호랑이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걱정을 안 해도 되게 되었다.
< 抱川郡誌, 1984. >


(4) 하늘이 도운 효자

아들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홀어머니는 갑자기 병환이 들었는데 노망까지 겹치게 되었다. 어머니는 오뉴월에도 연시감을 달라며 아들을 보챘다.
아들은 홀어머니를 위해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제철이 아닌 연시감을 찾아 헤매었다. 수십 리를 걸어 산 속 어느 집에 당도했다. 그 집에는 늙은 할머니 혼자 살고 있었다.
밤이 깊어 하룻밤을 묵게 해달라고 청하자, 할머니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해주면서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 보았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아들은 ‘너무 배가 고프다’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부엌에 가서 밥상을 차려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밥상 위에 연시감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들은 너무 기뻐서 밥과 반찬은 다 먹었으나 연시감은 먹지 않고 옆에 내려놓았다. 할머니가 아들에게 왜 연시 감은 먹지 않느냐고 묻자, 아들은 병드신 홀어머니의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아들의 효성이 지극하다면서 연시감이 많이 있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또 할머니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디서 호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아들은 놀라서 꼼짝 않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호랑이가 집까지 태워다 줄 거라면서 어서 올라타라고 했다. 아들은 정말로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절을 하고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아들은 호랑이를 타고 연시감도 얻어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 대진대 국문과 제3차 답사 자료집(가산면, 소흘면) 1993. 10. >


(5) 효자와 호랑이

옛날에 효자가 있었다. 효자는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셔서 약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날이 저물어 밤이 되자 큰 호랑이가 나타났다. 아들은 어머님 약을 구하려고 왔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 빌기를 계속하여 아침이 되었다.
효자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큰 바위였다. 그 바위 위에는 약이 있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와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
< 서정희, 64세, 여, 소흘면 무림리, 1994. 9. 30. >


(6) 효부(孝婦)

옛날에 젊은 내외가 홀 시아버지와 갓 낳은 아기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며느리가 효부였다. 시아버지를 아주 극진히 모셨는데, 시아버지는 밤마다 주무시다 말고 냉수를 한 사발씩 먹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며느리도 이것을 알아 매일 시아버지가 주무시기 전에, 머리맡에 냉수 한 사발씩을 올려놓았다.
하루는 며느리가 부엌에서 일하던 중에 아기가 막 깨어 울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일하던 며느리를 불러 아기를 재우라고 하였다. 그런데 아기를 재우다가 며느리가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어느덧 깊은 밤이 되어, 시아버지가 물을 찾았으나 물이 없었다. 며느리가 잠이 들었기 때문에, 미처 물을 갖다 놓지 못한 것이었다. 시아버지는 물을 마시러 속옷 차림으로 부엌에 나갔다. 그런데 그 집에는 송아지 한 마리가 있어, 걸핏하면 부엌으로 들어와 살림을 부서뜨리곤 했다. 잠결에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은 며느리는, 또 송아지가 들어온 줄 알고 내쫓으려 부엌으로 뛰어 나갔다. 그러나 그 소리는 물을 먹으러 속옷 차림으로 나온 시아버지가 내는 소리였다. 며느리로서는 시아버지의 속옷을 보았으니, 큰 불효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후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더욱 극진히 모시다가, 시아버지의 부인 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소문에 ‘건너 마을에 홀로 사는 늙은 과부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만나러 가는 중에 보따리를 이고 오는 그 과부를 만났다. 며느리가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혼자 살기에 싫증이 난 과부도 기꺼이 승낙을 했다. 집으로 무조건 모시고 와서는 시아버지께 허락을 받아 함께 살게 되었다.
여러 해가 지나서, 며느리와 그 남편은 가난한 살림을 이겨보려고 가지고 있던 땅을 팔았다. 그러나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 걱정이 태산같았다. 그 때 시어머니가 그것을 알고 돈을 주면서, 가서 판 땅을 도로 찾아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며느리와 남편은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쁜 마음으로 땅을 다시 찾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땅을 일구어야 하는 소를 판 것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시어머니가 돈을 주면서, 소를 찾아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과부였던 시어머니가 들고 있던 보따리 안에는 돈이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효부인 며느리는 효심 때문에, 걱정 근심 다 버리고 부모님 공양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 대진대 국문과 제1차 답사 자료집(포천읍), 1992. 10. >


(7) 열녀

옛날에 한 여자가 남편을 잃고 홀로 되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미색이 매우 뛰어 났다.
그 마을에 여색을 좋아하는 어떤 남자가 있어 소문을 듣고 여자를 보러 왔다. 남자가 문고리를 잡아 문을 열려고 했다.
“저, 부인 얼굴 한 번 봅시다.”
“곤란합니다. 전 남편을 잃은 과부라 얼굴을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에 남자가 억세게 문을 잡아 당겼다.
여자는 문에 매달려서 안간힘을 썼다. 여자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지자, 방안에 있던 가위를 들고는 자신의 손을 잘라 버렸다. 정조를 지키려다 여자는 결국 죽게 되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여자에게 열녀문을 세워 주었고, 남자에게는 사형을 내렸다.
< 이오봉, 73세, 남, 내촌면 마명1리, 1996. 9.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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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착한 마음씨


(1) 착한 거지 소년

어느 마을에 부자가 살았는데 그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그래서 그 부자는 방을 써 붙이고는 양자될 아이를 구하고 있었다.
많은 소년들이 그 방을 보고 부자를 찾아와 양자가 되기를 소망하였다. 그런데 부자는 찾아온 소년들이 자기의 물건을 탐내는 욕심쟁이인가 아닌가를 먼저 시험해 보았다. 즉, 소년들이 찾아오면, 부자는 그들을 자기 방에다 들여 놓고 얼마 동안 혼자 있게 했다. 그 방안에는 탐낼 만한 많은 물건들을 놓아두었으며, 벽장에는 더 귀한 물건들과 비둘기 한 마리를 넣어 두었다. 그것은 소년들이 욕심이 생겨 벽장문을 열면, 비둘기가 날아 나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뒤에 부자가 방으로 들어와서 벽장을 나와 있는 비둘기를 보고, 이런 아이는 모두 불합격시켰다. 왜냐하면 벽장문을 열어 본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많은 소년들은 부자의 재치에 넘어가 불합격의 쓴잔을 마시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거지 소년 하나가 찾아왔다. 이 소년은 비록 거지였으나 마음씨가 착했다. 부자는 여느 소년들과 같은 방법으로 이 거지 소년도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거지 소년은 합격이 되었다. 왜냐하면 벽장 문을 열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거지 소년은 부자의 양자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다고 한다.
< 抱川郡誌, 1984. >


(2) 착한 셋째 아들

옛날에 한 양반이 시골에서 살았다. 그 양반은 아들 팔 형제를 두었다.
팔 형제가 다 자라자 그들은 아버지 말씀을 잘 듣지 않았다. 아버지가 동으로 가라면 서로 가고 서로 가라면 동으로 갔다.
그 중에 셋째 아들만이 아버지 말씀에 거역하지 않고 효자 노릇을 했다. 아버지가 연세가 들으셔서 임종을 맞아 유언을 남겼다.
“마을 뒤쪽에 있는 고개 두 개를 넘어 가면 저수지가 있다. 그곳에 가서 가장 큰 버드나무를 찾아라. 그 나무의 가지 중에서 동쪽으로 뻗은 제일 큰 가지를 휘었다 놓으면 물이 없어지고 내가 들어갈 관이 나타날 것이니 거기다 나를 묻어다오.”
팔 형제는 아버지 생전에도 그 말씀을 잘 안 들었지만,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도 듣지 않았다. 셋째 아들만 ‘유언을 들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절친한 친구들 넷에게 몰래 얘기를 해서 데리고 갔다.
그곳에 가니 아버지 말씀대로 큰 버드나무가 있었다. 동쪽으로 뻗은 제일 큰 가지를 휘었다 놓으니 물이 다 없어지면서 금관이 나왔다. 그래서 아버지를 거기다 모시고 집에 있는 관에는 형들이 모르게 사람 크기 만큼의 적당한 다른 것을 넣어서 위장을 했다.
그 후 천벌이 내려졌는지 셋째 아들만 제외하고 나머지 아들들은 변을 당해서 전부 동물로 변해버렸다. 또한 천지가 개벽할 만한 비가 와서 셋째를 제외한 팔 형제의 집과 땅은 몽땅 집이고 뭐고 다 쓸려 내려가 버렸다.
두 달이 지난 후 셋째 아들은 형 둘을 만났는데, 그들은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아서 소가 되었다고 했다. 또 얼마 후 또 다른 짐승이 된 형제들도 만났다. 착한 셋째는 동물이 된 형제들을 모두 보살펴 주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봄 날, 셋째 아들이 밖에 나갔는데 어디선가 조그마한 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신기해서 방울을 집으려 하니 방울이 자꾸 도망을 갔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 방울이 우물에 뚝 떨어져 버렸다.
셋째 아들은 방울을 잡는 데만 신경을 쓰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그곳은 극락이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님이 나타나셔서 여자 한 명을 배필로 주고 ‘이 여자하고 결혼해서 잘 살라’고 하셨다. 또 인간 세상에 나가거든 ‘어느 때가 되면 어느 곳에 말뚝을 박고 재산 전부를 거기다가 새끼를 꽈서 묶어 두라고 했다.
속세에 나와서 아버지가 시킨 대로 했다. 그 날 저녁에 비가 오더니 지난 번처럼 천지가 개벽할 큰 장마가 되었다. 장마가 지나가니 그 말뚝 박은 자리가 전부 곡식이 잘 되는 까만 흙으로 메워졌다. 그래서 그 셋째 아들은 부자가 되어서 잘 살았다고 한다.
< 김영수, 67세, 남, 영중면 양문4리, 1997. 4. 8. >

(3) 착한 며느리

옛날에 어떤 부자 형제가 살았다. 그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죽기 전에 형과 동생에게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 형은 돈 욕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 계속 돈을 불렸는데, 동생은 어떻게 하다 보니 재산을 다 날려버리고 품을 팔면서 가난하게 살게 되었다. 또한 동생네 집은 아이가 여럿이라 부인이 매일 품을 팔면서도 먹을 것이 부족했다.
욕심 많은 형은 동생이 가난하게 된 것을 고소하게 여기면서 도와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살아 계셨는데 큰집에서 사셨다. 욕심 많은 큰형과 큰며느리이지만 어머니에게는 극진했다.
하루는 큰며느리가 멍석에 벼를 널어 놓고 작은며느리를 불렀다. 벼를 봐주면 쌀을 얼마 만큼 줄 테니 벼 널어놓은 것을 봐달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이것을 알고 작은며느리가 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큰아들은 부자여서 걱정이 없는데, 어머니는 항상 가난한 작은아들 걱정뿐이었다. 작은며느리가 옆에 와 있고 또한 큰며느리가 쌀을 준다고 해서 양동이까지 있는지라 작은 아들네에게 쌀을 너무 주고 싶었다. 어머니는 큰며느리 눈치 때문에 작은며느리의 양동이에 몰래몰래 쌀을 가져다 담았다.
큰며느리가 마루에서 베를 짜다 보니 시어머니가 벼를 한 움큼 쥐고서
“훠어이, 훠어이!”
하다가 작은며느리 양동이에 쏟아 놓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화가 난 큰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꿍’해 있었다.
한편 작은며느리가 일을 마치고 양동이를 보니 처음에 큰형님이 담아놓은 쌀 양보다 훨씬 많이 담겨져 있었다. 그래서 큰형님께 말씀을 드리고 자기가 가지고 가기로 된 만큼만 덜어서 가지고 갔다. 큰며느리가 이것을 보고 ‘시어머니는 조금 얄미워도 동서 마음은 참 양심 바르고 착하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 가려는 작은 동서에게
“동서! 다음에 내가 삯을 좀 줄 테니, 시아주버니 생신 때 자네가 밥을 좀 해주었으면 좋겠네.”
라고 하니 작은며느리가 활짝 웃으며
“아이고, 형님! 염려 마세요. 아주버니 생신 해드리려고 벼 조금 있는 것을 말렸습니다.”
라고 말했다. 작은며느리의 말에 큰며느리는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형님의 생일 전날, 큰며느리가 상 차리는데 필요한 돈을 작은 동서에게 주고 생일상을 작은집에서 차리게 했다. 그 다음날 가서 보니 밥하는 것, 술 만드는 것, 모든 것을 아주 정성 들여서 해놓았다. 그리고는 시아주버니한테 너무 잘 해주는 것이었다. 큰며느리는 그것을 보고 더욱 감동을 받았다.
큰며느리가 욕심이 많아서 이제까지 작은집을 도와주지 않은 것이었지,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작은집을 도와주고는 싶은데, 남편이 도와주지 말자고 할 게 뻔했다. 그래서 큰며느리는 꾀를 썼다.
저녁에 가족끼리 생일 밥을 잘 먹고는,
“서방님, 우리 집으로 가십시다. 술을 내가 빚어 놨으니 가서 한 잔 하세요.”
라며 작은집 내외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좋은 술을 꺼내서 자기 남편한테 연거푸 마시게 하고 시동생한테는 정신을 잃지 않을 정도만 술을 줬다.
그러자 남편은 아무 것도 모르고 술에 취해 곯아 떨어졌다. 자기 남편이 취한 틈을 타서 큰며느리는 장롱에서 두 섬지기 땅문서를 꺼내 가지고 와서
“우리는 이것 없어도 잘 사니 서방님이 가져가서 애들하고 제발 좀 잘 살아 보십시오.”
라고 말했다. 작은 내외는 깜짝 놀라
“아니, 형님이 아시면 큰일날텐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라고 하자,
“그건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고 가져 가세요.”
라고 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두 섬지기는 사천 평이 되니 먹고 살기는 넉넉했다. 작은집 내외가 돌아가고 나서 큰며느리는 장롱에 있는 문서 보따리를 확 뒤집어 놓았다.
아침에 남편이 일어난 다음에 보니 문서 보따리가 방안에 널부러져 있었다.
“아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라고 부인에게 물으니
“당신 생각 안나? 당신이 동생 못산다고 아무개 땅, 아무개 땅 그 두 섬지기 땅문서를 주면서 다 헤쳐놓은 것인데 몰라요?”
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깜짝 놀라
“내가 그랬어? 난 그 생각 안 난다. 이거 어떡하나? 아이고!”
라고 땅을 치는 것이었다.
작은집 내외는 평생 동안 큰형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큰댁에 잘하면서 우애있게 잘 살았다.
< 박종빈, 80세, 남, 영중면 양문3리, 1997. 4. 8. >


(4) 착한 서씨

옛날에 서씨라는 사람이 천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마음이 착한 그는 동네 사람 몇에게 돈을 꾸어주고 보증도 서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돈을 다 떼어먹고 안 갚아서 할 수 없이 두 내외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데리고 북간도로 갔다.
농사를 지을 마음으로 북간도에 가서 중국 놈들에게 땅을 얻어 조를 심었다. 가을이 되니 조가 휘어질 정도로 잘 되었다. 가을에 그것을 거두어서 털려고 하니 중국사람이 딸을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못 주겠다고 하니 다음 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마누라까지 뺐으려고 들었다. 그 놈들이 죽이려 덤벼들어서 간신히 아들만 데리고 쫓겨 나왔다.
아들 하나 데리고 딸과 마누라는 거기 두고 나왔으니 걸음이 내키지 않았다. 죽어도 같이 죽자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갔다. 바깥에서 살피고 있다가 머리를 창문으로 내밀어 보니 그 중국 사람이 참나무를 길게 패고 있었다. 서씨는 나무를 들어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마구 쳤더니 그 놈이 죽었다. 또 한 놈이 들어와서 마저 없애고는 농사지은 것을 다 버리고 마누라와 딸을 찾아서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한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어느 산골 마을에 도착하여 조금 남은 돈으로 밥을 먹을 양으로 여인숙에 들어갔다. 그 여인숙에는 한 영감이 밥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도 어렵지만 그 노인네 처지가 애처로워 보여서 말을 걸었다.
“영감님, 어찌하여 여기서 밥 심부름을 하시오?”
“나는 강원도에 사는데 노잣돈은 떨어지고 눈은 많이 와서 도저히 갈 수 없어 여기서 밥이나 얻어 먹으며 지내는 것이오.”
들으니 정말 딱한 사정이었다. 그래서 서씨는
“내가 돈을 좀 내어놓을 터이니 이 분에게 진지를 좀 대접해 주오.”
하고는 있는 돈을 전부 털어 노인에게 주고는 나왔다.
몇 달을 구걸을 하며 걸어서 경기도에 이르렀다. 거기서도 어떤 집에 들어가서 밥을 얻어먹고 나오는데 그 주인네가
“여보시오. 우리 딸이 시집을 갈텐데 바느질 할 사람이 이 동네에 없으니 바느질을 좀 해서 우리 딸 대례만 끝내주고 가시오.”
하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부인과 딸이 나서서 그 집 바느질을 죄다 해주었다. 그런데 그 집 딸은 앉은뱅이였다. 주인이 다시
“우리 딸이 앉은뱅이인지라 나가서 예를 치를 수가 없소. 그러니 대례만 당신 딸이 치루어 주면 우리 딸을 가마에 태워 보낼 수 있을 터이니 그렇게 좀 해주오.”
하고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두 내외는 하는 수 없이 주인의 부탁 대로 해주었다. 그런데 그 신랑이 그것을 어찌 알았는지 예를 마치자마자 하룻밤도 자지 않고 두 내외의 딸을 가마에 실어 집으로 가버렸다.
감쪽같이 딸을 여읜 내외는 신랑 일행을 쫓아갔다. 그 신랑집 앞에 이르니 나무더미가 산처럼 쌓인 부자집이었다. 그 집에서는 색시가 왔다고 야단을 하며 즐거워하나 내외는 잃은 딸을 찾을 길이 없어 막막하여 나무더미 앞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이 집 노인이 그 내외를 내다보았다.
“저 나무더미 앞에 있는 것이 사람인 것 같은데…….”
“예, 얻어 먹으러 온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안됐구나. 잔치를 하는데 야박하게 굴 수 있나. 얼른 이리로 데리고 와서 상을 차려주거라.”
하인이 그들 내외를 불러 상을 차려주는데, 노인이 가만히 들여다보니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지난 날 산골에서 자신이 밥 심부름을 하며 얻어 먹고 있을 때 밥 값 내어주던 그 사람들이 아닌가. 노인은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 혹시 아무개에서 만났던 서씨 아니오?”
“네, 그렇습니다.”
“허허, 이거 반갑구려. 나 기억하오? 거기서 밥 얻어먹던 사람이오.”
두 사람은 서로 반가이 인사를 하고 노인이 여기까지 오게 된 연유를 물어서 바느질을 해주다가 딸을 잃은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노인이
“하하, 그럼 우리가 사돈이 된 것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신랑이 바로 노인의 아들이었다. 결국 두 집안은 사돈을 맺고 서씨는 노인이 땅과 집을 주어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 김중관, 75세, 남, 신북면 만세교리, 1998. 9. 24. >


(5) 착한 영감님

옛날 산골에 사는 한 영감님이 하루는 멀리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배가 몹시 고팠다. 그런데 다른 노인이 고개 마루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니 더욱더 배가 고팠다. 영감님은 그 노인에게 다가가
“여보시오, 내가 배가 고파 죽겠으니 밥알이라고 뜯어 먹게 밥싼 보자기라도 날 좀 주오. 배고파 죽겠수.”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노인은
“안됩니다.”
하고 퉁명스럽게 말할 뿐이었다.
이미 며칠을 굶었던 영감님은 너무 배가 고파 결국 기절해 버렸다.
기절한 노인은 그렇게 잠이 들어버렸다. 꿈속에서 신이 나타나 말했다.
“너 이렇게 여기 누워 있을 것이 아니다. 저 아래 마을로 내려가면 오막살이 빈집이 하나 있는데 그 집으로 가 보거라. 가면 터줏자리 밑에 금항아리가 있으니 그것을 꺼내거라. 그것만 가지고 있어도 일평생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니라. 여기서 이렇게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 가거라. 여기 오래 있으면 네 목숨이 위태롭다.”
영감님이 깜짝 놀라서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영감님은 ‘희한한 꿈도 다 있구나’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마을로 내려가 보았다. 마을에 내려가 보니 사람의 기척이 없이 텅 빈 집 한 채가 있었다. 영감님은 꿈에서 신이 말해준 대로 터줏자리 밑을 파보았다. 파놓고 보니 과연 항아리가 있는데, 그 안이 보물로 가득하였다. 영감님은 너무나 기뻤다. 그 보물을 가지고 내려온 영감님은 그것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감님은 우연히 전에 고갯마루에서 만났던 노인을 만났다. 영감님은 그에게 다가가서
“여보시오, 전에 당신이 밥을 안 줘서 내가 잠시 혼절했다가 꿈을 꾸었소. 그 꿈에서 신이 알려준 곳을 찾아가 보물을 얻어 큰 부자가 되었소. 만일 당신이 내게 밥을 주었다면 산을 곧 내려왔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런 횡재를 하지 못했을 테니 모두 당신 덕이요.”
하고 그에게 감사를 전했고 그 노인에게 함께 살기를 청해 두 사람은 오랫동안 사이좋게 잘 지냈다.
자신에게 밥을 주지 않은 노인을 원망하지 않고 되려 덕으로 감싼 영감님의 이야기는 이후 모든 이들의 칭찬을 받는다.
< 백천근, 83세, 남, 신북면 계류리, 1998. 9.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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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혜와 꾀


(1) 지혜로운 선생님

옛날에는 혼인날을 잡아주는 ‘혼사 택일’이 있었는데, 모든 마을에 택일을 해 주는 택일선생이 있었다.
하루는 막내아들을 장가 들이려는 사람이 내달 안으로 혼인을 치루자고 마음먹고 택일 선생을 찾아갔다. 그 집에 가니,
“선생은 멀리 외출을 가셔서 언제쯤 돌아오실지 모릅니다.”
고 했다. 그래서 낙담하고 집에 돌아와 있으려니, 지나가던 객이 하룻밤 묵자고 청하며 들어왔다.
객이 주인 얼굴에 근심이 있음을 알고 그 연유를 물었다. 주인이 막내아들의 택일 때문이라고 대답하니, 객은 자신이 택일을 해 주겠노라고 하며 혼인날을 잡아 주었다. 마침 주인도 그 날이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주인은 감사하다며 혼인날 그 객을 초대했다.
얼마 후, 택일선생이 볼일을 다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택일 선생의 식구들이,
“이런 사람이 와서 날을 잡으려다 잡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오늘 그 사람의 자식이 혼인을 한답니다.”
고 했다. 택일선생이 부랴부랴 날을 보니 그 날은 ‘홍사날’이었다. 그래서 ‘큰일 났다’ 싶어, 그 홍사를 불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홍사는 막내아들을 잡아갈 시기를 놓쳐 버렸다. 그렇게 해서 홍사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택일 선생이 그 집으로 가서 누가 날을 잡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객이 대답했다.
“저는 선생이 그 홍사를 쫓을 줄 알았습니다.”
< 이종세, 59세, 남, 가산면 방축3리, 1994. 9. 30. >

(2) 영리한 며느리

옛날 어느 마을에 성미가 아주 고약한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그는 며느리들에게 일을 시킬 때, 꼭 며느리들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며느리들은 그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듣기가 매우 거북하였다.
그러던 중 막내아들이 장가를 들게 되었다. 사흘이 지나자 시아버지는 막내며느리를 불러 놓고 그 이름을 물었다.
“아버님, 제 이름이 하도 망측해서 여쭙기 부끄럽습니다.”
“어허, 괜찮다. 어서 말해라.”
“아버님, 제게는 본래 두 언니가 있었는데, 큰언니는 이름을 바구미(쌀벌레)라 했고, 둘째 언니는 개똥이라 했어요.”
“허어, 참! 이름 한 번 괴상하구나!”
“그런데 아버님, 두 언니는 그만 죽어버렸어요. 이러자 저희 아버님께선 작명을 잘못해서 죽은 것이라 생각하시고, 제 이름만은 오래오래 생각하시다가 쥐며느리라고 지으셨대요.”
“쥐며느리? 쥐며느리라?”
시아버지는 몇 번이고 입 속으로 그것을 중얼거려 보았다. 그러자 큰일이 났다 싶었다. 앞으로 막내며느리를 쥐며느리라 부르게 되면, 자기가 영락없이 쥐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그 시아버지가 며느리들의 어릴 때 이름을 부르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 抱川郡誌, 1984. >


(3) 꾀 많은 아버지

옛날 어느 마을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홀아비 하나가 살고 있었다. 갑자기 부인이 죽고 나니, 홀아비는 살림이 제대로 안될 뿐더러 적적하기도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홀아비는 새장가를 들기로 작정하고 후처를 두루 구하였다. 그러나 총각도 아닌데다가 본처의 아들까지 딸려 있어, 좀처럼 마땅한 사람이 나서지를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과부 하나가 배필로 나섰다. 그러나 이 과부도 홀몸이 아니라 어린 아들 하나가 딸려 있었다. 홀아비는 여러모로 생각하다가, 이것이 자기 팔자라 여기고 그 과부를 후처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이 과부는 어리숙하면서도 심술궂고, 데리고 온 자기 자식만을 사랑했다. 즉, 본처 자식을 늘 꾸짖고 때리는가 하면, 자기 자식은 귀여워하고 맛있는 반찬을 골라서 먹였다.
몇 달을 두고 이런 광경을 보아 온 남편은 더 이상 그대로 볼 수가 없었다. 기가 죽어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본처의 아들이 불쌍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후처를 내쫓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때때로 그러지 말라고 타일러도 보았지만, 그럴수록 본처 자식에 대한 구박이 심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에겐 묘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본처의 아들과 의붓아들을 불러 와서는, 후처가 보는 앞에서 씨름을 하게 했다. 그런데 그 씨름에서 의붓아들이 지게 된 것이다. 그러자 후처는 자기 아들이 진 것을 몹시 분하게 여겨, 이를 덜덜 갈면서 본처의 아들을 한참이나 쏘아보았다. 그러더니 남편에게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쟤는 내가 이 집에 오기 전에 무엇을 먹였기에, 저렇게도 기운이 센가요?”
이 질문을 받자 남편은, 어리석은 후처가 자기가 파 놓은 함정에 빠져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응, 그 아이? 보리밥과 김치만 주었지. 그걸 먹었으니 기운이 날 수밖에. 왜 무엇이 잘못됐나?”
이렇게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어리석은 후처는 그 말을 곧이들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본처의 자식에게는 쌀밥과 고기 반찬을 주고, 자기 친자식에게는 꽁보리밥과 김치만 먹였다고 한다.
< 抱川郡誌, 1984. >


(4) 영리한 머슴

옛날에 어느 대감집에서 머슴을 사는 아이가 있었다. 그 머슴의 채밭에는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가지가 대감집 울안으로 넘어가 있었다. 그래서 해마다 살구가 열리면 대감은 자기네 집으로 넘어 온 살구를 따 먹고는 했다. 하루는 머슴이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대감님 방문에다 주먹을 디밀고 물었다.
“대감님 이게 뉘 주먹입니까?”
“아, 이놈아. 그게 네 주먹이지 뉘 주먹이냐.”
“근데 왜 우리 살구나무 열매를 대감님이 따 잡숴요.”
“아, 요런 고얀 놈이 있나.”
대감님은 그 아이의 아버지를 불러다가 야단을 쳤다. 그러고는 그 때가 동지 때였는데, ‘딸기를 구해 오라’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명령하였다. 대감에게 혼이 난 아버지는 아들에게,
“왜 쓸데없는 짓은 하고 다녀서 대감님한테 혼나게 하느냐?”
하고 야단을 쳤다. 그러자
“우리 살구나무를 대감님이 해마다 따 잡수시니까 그렇죠.”
라고 하였다. 대감이 아버지에게 딸기를 구해 오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머슴은 대감 아들과 만나 같이 놀다가 대감님께 말했다.
“대감님, 우리 아버지가 딸기 따러 갔다가 뱀에 물려 꼼짝도 못해요.”
“야, 이놈아. 지금 같은 엄동설한에 무슨 뱀이 있느냐?”
“그럼, 지금 딸기가 어디 있어요.”
대감은 이번에도 또 당한 걸 분해하면서, 머슴의 아범을 불러다 벼락치듯 혼을 내고 이번에는 ‘황소가 새끼 난 걸 구해 오라’고 시켰다. 이 사실을 안 머슴은 이튿날 아침에 대감님네 집에 가 대감님께 청을 하였다.
“대감님 짚 좀 주십시오.”
“아, 짚은 뭐하게?”
“우리 아버지가 애를 낳을 건데 짚이 필요해서요.”
“아, 이놈아. 남자가 무슨 애를 낳느냐?”
“그럼, 황소가 무슨 새끼를 낳아요.”
대감은 그 머슴이 너무 괘씸해서, 한양 갈 때 마부로 끌고가 없애 버리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며칠 뒤 대감은 머슴을 데리고 한양에 가게 되었다. 가다가 배가 고파 팥죽을 먹는데, 머슴이 팥죽을 들고 와서 훅훅 불어 대는 것이 아닌가.
“얘, 너 팥죽을 왜 부니?”
“들고 오다가 잘못해서 콧물이 떨어졌어요.”
“이놈아, 너나 쳐 먹어라.”
그래서 아이는 ‘좋아라’ 먹고 대감은 ‘쫄쫄’ 굶었다. 또 다시 길을 가다보니 대감이 뒤가 마려워졌다.
“아, 뒤가 마려운데 어디서 뒤를 보고 가야겠다.”
“아유, 대감님. 하늘이 보는데 어디 아무데서나 뒤를 봅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러더니 머슴은 수수깡으로 부추리를 만들어 주었다. 대감이 거기 올라 앉아 대변을 보고서 허리춤을 여미지 않고 한발을 내딛다가 넘어져 그만 똥투성이가 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대감은 조금더 참아 한양에 가서 머슴을 없애버리자고 생각했다.
대감은 한양에 도착해서 말을 매놓고, 머슴에게 단단히 지키라 하고서는 회의에 들어갔다. 아이는 눈을 감고 고삐만 붙들고 있다가 대감이 들어가자 말고삐를 잘라 팔아먹었다. 대감이 회의를 마치고 나오니 말이 보이지를 않았다.
“야, 아무개야. 내 말 어디 갔니?”
“아유, 정말 눈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네요. 누가 잘라 갔나봐요.”
너무 화가 난 대감은 머슴의 등에다가, ‘내 말 들을 것 없이 내려가자마자 당장 때려 죽여라’는 문구를 써서 붙이고는 그의 호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며 먼저 내려보냈다.
머슴이 오는 길에 고개를 넘어 오는데 시주를 하고 오는 대사를 만나서 동행하게 되었다. 머슴은 대사에게 ‘등에 써놓은 것을 읽어주면 돈을 주겠다’고 하여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
“대사님, 이걸 지우고 내가 부르는 대로 써 주시오.”
“그래라. 뭐라고 쓰면 되느냐?”
“그저, ‘내 말 들을 것 없이 막내딸하고 사흘 안에 결혼을 시켜 데리고 있으시오’라고 써 주시오.”
머슴은 집으로 오자마자 마님에게,
“마님, 이거 대감님이 써 주신 건데 뭐라고 썼는지 보세요.”
하고 등을 들이대었다. 그것을 본 마님은 부랴부랴 잔치음식을 차려 잔치를 했다. 몇 주 후에 돌아온 대감은 이 사실을 알고 분해했다.
“당장 죽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건가?”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사흘 안에 딸과 혼인시켜 데리고 있으라고 하셨잖아요.”
이렇게 일이 어긋나 버려서, 대감은 할 수 없이 그를 사위로 삼고 벼슬을 주어 데리고 살았다.
< 대진대 국문과 제4차 답사 자료집(일동면, 이동면), 1995. 9. >

(5) 꾀 많은 아이

예전에는 이동에서 포천으로 장을 보러 가려면 문안고개나 설치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그러나 고개에 도둑이 많아서 장을 보고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옛날에 한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소를 팔려 해도 도둑 때문에 팔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아이가 아버지께,
“팔기만 하세요. 그러면 돈은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소를 팔자, 아이는 길쭉한 호박을 하나 샀다. 그리고는 호박의 속을 파내고 소 판 돈을 거기다가 집어 넣어서 가방에 메고 고개를 넘었다.
아이는 오는 도중에 고개에서 도둑을 만났다. 도둑이 호박을 보고는 뭐냐고 물어보자 아이는 냉큼 호박 속에 돈이 있다고 말을 하고 돈을 모두 꺼내줬다. 도둑들이 기뻐하며 아이의 재주를 칭찬했다. 이에 아이는
“아유, 이게 뭐 재주라 할 수 있습니까? 제 아버지는 재주가 더 좋습니다. 저녁에 나갔다가 오시면 돈을 아주 많이 가져오십니다.”
라고 했다.
도둑들은 아이의 아버지가 자기들과 같은 부류로 자기들보다 재주가 나은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돈을 돌려주고?아버지를 만나러 언제 찾아가겠다?이르고는 무사히 돌려보냈다.
아이는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하고는 어제까지 술을 담그고 칡을 해 놓으라고 했다.
며칠이 지나자 도둑들이 와서 아버지에게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이른 대로 말했다.
“난 혼자하는 게 좋소. 여럿이 하면 잡히기도 쉬울 테니, 난 혼자 하겠소.”
그러자 도둑들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연습을 핑계 삼아 미리 준비한 칡으로 도둑들을 묶고, 관하에 도둑들을 잡아놨다고 연락하여 도둑들을 모두 잡을 수 있었다.
또 한번은 아이가 소 판 돈을 가지고 오다가 날이 너무 어두워서 친구의 집에 묵어 가기로 했다. 친구네 집에서는 어서 자라고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누워 있었는데 친구의 아버지가 칼 가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는 그 소리를 듣고 당장 뛰어나가기도 힘들고 그냥 있기도 어려워서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친구가 잠을 자는 사이에 자리를 살짝 바꿔 누운 것이다. 주인이 들어와 자기 아들을 이불에 싸서 나갔다. 그 틈을 타서 아이는 마구간으로 달아나 살았다고 한다.
그 꾀 많은 아이의 성은 이씨라고 전해진다.
< 김동진, 71세, 남, 일동면 길명3리, 1995. 9. 14. >

(6) 똑똑한 막내딸

딸이 셋 있었는데 아버지가 딸들에게 누구 덕에 사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큰딸과 둘째딸은 부모님 덕에 산다고 대답했으나 막내는 자기 덕에 산다고 대답했다. 화가 난 아버지는 막내딸을 내 쫓았다.
집에서 쫓겨난 막내딸은 거지처럼 떠돌다가 어떤 집에 일꾼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막내딸을 좋아하게 된 그 집 아들과 결혼했다. 남편은 숯가마를 하는 조금 어리숙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막내딸이 남편의 일터로 밥을 가져갔다. 남편이 밥을 먹는 사이, 막내딸은 숯가마가 금덩어리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그걸 팔아 부자가 되었다.
집을 다시 찾아간 막내딸에게 아버지는 ‘과연 너는 네 덕에 산다’고 했다.
< 대진대 국문과 제2차 답사 자료집(군내면), 1993.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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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보(어리석음)


(1) 바보 사위

옛날 어느 바보 신랑이 부인과 함께 처가엘 가게 되었다. 그런데 부인은 인사 한 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남편이, 또 어떤 실수를 할지 몰라 걱정이었다.
그래서 부인은 꾀를 하나 생각해 내었다. 즉, 남편의 고추에다 기다란 실을 매어놓고, 자기가 부엌에서 그 실을 한 번 당기면 ‘진지 많이 잡수십시오’, 두 번 당기면 ‘담배 피우십시오’라고 인사를 하도록 약속을 했다.
이리하여 처가에 당도한 바보 신랑이 장인과 겸상으로 밥을 먹으려 하는데, 그 때 마침 부인이 실을 당겼다.
“진지 많이 잡수십시오.”
사위의 인사를 받자, 장인은 이제 사위가 사람이 되었나 보다 하고 매우 기뻐했다.
이윽고 상을 물리자, 부인이 이번에는 실을 두 번 당겼다.
“담배 피우십시오.”
여기까지는 제대로 인사가 잘 되었다.
그런데 부엌에 있던 부인이 변소에 가게 되었다. 그래서 조종하던 실 끝을 부뚜막에 있는 북어 대가리에다 매어 놓고 갔다. 그런데 그 사이 그 집 개가 들어와서 북어 대가리를 빼어 먹으려고 마구 잡아 흔들었다. 남편은 실이 자꾸 당겨지자 그에 맞추어 장인에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아야, 진지 많이 잡수십시오.”
“아야야, 담배 피우십시오. 아야야.”
개가 자꾸 급하게 당기자, 사위는 실에 맞추어 인사를 빠르게 하느라
“진지, 담배.”
“진지, 담배.”
하며 고개를 수없이 끄덕였다.
그리하여 사위는 또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 抱川群誌, 1984. >


(2) 바보 부부

옛날 어느 마을에 바보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은 돈을 벌 수 있는 무슨 장사가 없을까 하고 찾아 나섰다.
장사를 찾아다니던 어느 날 그는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아주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를 맡자 그것을 팔러 다니면 돈을 많이 벌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 냄새가 나는 집을 찾아갔다. 알고 보니 그 집에선 깨를 볶고 있었다. 그래서 바보는 장으로 가서 깨를 한 가마니나 사와서 볶았다. 그러고는 그것을 지고 가서 밭에다 심었다. 더 많은 깨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볶은 깨가 어찌 나겠는가?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깨가 나지 않자, 바보는 그만 병이 나서 자리에 누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바보는 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이웃집에 가서, 기운을 돋구는 국 이름을 물었다. 그 집에서 꼬챙이에 꿴 합자국이 좋다고 가르쳐 주었다. 바보 부인이 이 소리를 듣고, 그것을 사러 시장으로 갔다. 그런데 가다가 그만 그 이름을 잊어먹었다.
바보 부인은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다가 곶감 가게로 갔다. 그때 퍼뜩 꼬챙이에 꿴 것이라고 한 이웃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곶감이 꼬챙이에 꿰어 있으므로 그것을 사와서 물을 붓고 국을 끓였다.
이윽고 바보 부인이 국을 푸려고 소댕을 열어 보니, 곶감은 풀어지고 꼬챙이만 남아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이 일을 어쩌지? 어느 놈이 와서 건더기는 다 건져가고 꼬챙이만 남았네. 아이고 원통해라.”
바보 아내는 솥을 두드리며 엉엉 울었다.
< 抱川郡誌, 1984. >


(3) 바보 소년

옛날 어느 마을에 바보 소년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집은 너무나 가난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떡을 훔쳐 와서 바보 아들에게 주면서, 그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보 아들은 골목에 나가서, 그것을 자랑삼아 친구들에게 발설하고 말았다.
그런데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나졸이 아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러고는 그 아이더러 아버지를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그래서 아들이 집으로 들어와서 그의 아버지에게 나졸이 찾는다고 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큰 독 속으로 들어가 숨으면서, ‘어데 가고 집에 없다고 그래라’ 했다. 고지식한 바보 아이는 밖으로 나와 나졸에게 자기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우리 아버지가 어데 가고 집에 없다고 그러래요.”
이 소리를 듣자, 나졸이 즉시 그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독 속에 숨어있는 아이의 아버지를 체포하였다.
과연 죄는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 抱川郡誌, 1984. >


(4) 바보 형

어느 마을에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살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큰아들이 바보라서 그것이 늘 걱정이었다.
어느 날, 두 아들이 산 중턱에 있는 밭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 노루 한 마리가 콩잎을 따 먹으러 밭 가까이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것을 본 형제는 그 노루를 잡으려고 쫓아갔다. 그러나 이 낌새를 챈 노루는 벌써 멀리로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아우는 자기가 노루를 몰아서 이리로 쫓을 테니, 자기 형에게 지키고 있다가 잡으라고 했다. 아우가 한참 만에 노루를 찾아내어, 형이 있는 쪽으로 몰아 내려갔다. 하지만 노루목에서 기다리고 섰던 형은, 정작 노루가 뛰어 오자 그 길목을 비켜서고 말았다.
이것을 멀리서 본 아우가 형에게로 내려오더니, 버럭 화를 내며 앞으론 움직이는 것이 나타나면 무조건 때려 잡으라고 당부를 해 두었다. 그리고는 다시 도망간 그 노루를 찾아 올라갔다. 이리하여 아우가 산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형이 ‘잡았다’는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아우가 기뻐서 허겁지겁 형에게로 달려와 보니, 형은 점심을 가져 오던 자기 어머니를 때려 죽여 놓고 있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우는 울면서 자기 어머니의 시신을 지고 산을 내려왔다. 오다가 날이 저물고 춥기까지 해서, 잠시 불을 피우고 쉬기로 했다. 그런데 잘못해서 그 불이 어머니의 시신에 붙어 시신마져 타 버렸다. 아우는 기가 막혀 땅을 치며 우는데, 형은 타고 남은 어머니의 이빨을 보고는,
“얘, 넌 왜 우니? 이봐, 우리 엄마가 따뜻하다고 웃고 있지 않니?”
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 抱川郡誌, 1984. >


(5) 바보 신랑

옛날 아주 옛날에 한 떠꺼머리 총각이 있었는데 바보천치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부모님들이 어떻게 해서 장가를 보냈다.
그랬는데 장가를 간 지 삼일 만에 처가에 가게 되었다. 처가 어른들이 있는데 신랑에게는 장인 장모가 되고 또 어머니한테는 사돈 어른들이 되었다. 사돈어른들 찾아 뵙는다는 게 옛날에는 보통의 인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진 게 너무 없었다. 무엇인가 사돈댁에 선물을 보내야 하는데 그도 걱정이지만, 아들이 처가를 잘 찾아갈까도 걱정이었다.
집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머리를 썼는데, 바보천치인 아들에게 장인 성을 가르쳐 주려고 배를 하나 주었다. 사돈 되는 사람의 성이 배씨였다. 근데 이 배씨라는 걸 가르쳐 줘도 기억하지 못할 게 뻔하니까 배를 하나 주었다.
“이 배를 보면 배씨 생각이 날 것이다. 배 서방을 찾아가라.”
그러면서 또 무엇을 주었는가 하니 씨암탉이었다.
“이 씨암탉을 꼭 갖다 드려라.”
“인절미, 이것을 정성껏 만들었으니 인절미도 갖다 드려라.”
그 다음에 막걸리가 있었다.
“동동주를 정성스럽게 담았으니까 잘 갖다 드려라. 사돈 어르신이 약주를 좋아하시니깐 꼭 갖다 드려라.”
그래서 그 바보가
“네, 알겠습니다.”
하고선 처가를 찾아갔다.
찾아가는 길에 개울이 많이 있었다. 열 두 개울이나 건너야 했다. 이런 마당인데 한 걸음 건너뛰고 나니까는 그 배가 뚝 떨어져 나가고 꼭지만 남았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바보는 ‘아, 이거 꼭지서방네를 찾아가는가 보다’ 하고 꼭지서방네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다른 도랑 하나를 건너뛰니까 이번에는 배가 고팠다. 먹을 것은 인절미 뿐이라, 인절미를 다 먹었다. 먹긴 먹었는데 이걸 뭐라 해야 하는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니까 인절미는 늘어났다 움츠러지는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 이건 늘여움츠리기’ 했다.
그러다 또 도랑을 건너뛰었다. 이번에는 목이 말라서 동동주를 마셨다. 마시고 보니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개울을 건너 뛸 때의 기억으론 그 소리가 ‘쫄랑쫄랑’ 했다. 그래서 ‘아, 이건 쫄랑쫄랑이’ 했다.
또 건너뛰는데 배도 부르고 술을 먹어 정신도 없는데, 갑자기 씨암탉이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씨암탉인지도 모르고 보다가 ‘꼬꼬 푸드득’ 하고 날아가니, ‘아, 이거 꼬꼬 푸드득이구나’ 했다.
이렇게 짜 맞추고는 배서방네를 찾아 나섰다. 배는 꼭지뿐이니 ‘꼭지서방네’를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이렇게 헤매고 다니니 동네 아낙들이 행색이 형편없는 바보 신랑을 가엾이 여겨 물어 물어 ‘꼭지서방네’ 대신 ‘배서방네’를 찾아주었다.
천신만고 끝에 처가에 들어서니 장인, 장모가 반겨하며 묻었다.
“자넨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가?”
“물어 물어 꼭지서방네를 찾아갔는데 아주머니들이 꼭지서방은 없어도 배서방네는 있다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그러더니 ‘인상도 딱하군’하며 국수를 주었다. 바보가 그것을 ‘인상도’라 칭하며 말하기를
“인상도 하나 주어서 먹고 왔죠.”
라고 말하였다. 장인 장모가 기가 막혀서 또 물었다.
“자네, 그냥 빈손으로 왔는가?”
“아,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래, 무얼 가지고 왔는가?”
“글쎄, 가지고 오긴 했는데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까 꼬꼬 푸드득이 날아가고 없어졌죠.”
장인 장모는 ‘꼬꼬 푸드득이가 암탉을 얘기하는 것이니까 자기 사돈 되는 양반이 그래도 씨암탉까지 준비했었구나’ 생각했다.
“자네, 또 무얼 가지고 왔는가?”
“아, 늘어움추리기를 가지고 오다가 다 먹어버렸죠.”
“그럼 그 담엔 또 무얼 준비했는가?”
“아, 쫄랑쫄랑이를 가지고 오다가 목이 마르고 그래서 홀딱 다 먹고 왔죠.”
다 듣고 나니 기가 막혔으나, 혼사는 이미 치른 후라 무를 수도 없고 그저 막막하기만 하였다고 한다.
< 이경렬, 49세, 남, 신북면 심곡리, 2000. 9.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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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힘과 용기


(1) 꼽추 장사

마차를 손으로 끌고 다닐 정도로 힘이 센 꼽추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꼽추가 된 데는 까닭이 있었다.
꼽추가 되기 전에도 장사는 힘이 무척 세었다. 그래서 힘이 약한 사람들은 장사를 안방에다 모시고, 장사가 시키는 것을 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초립동이가 장사의 집에 와서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했다. 장사는 쪼그만 놈이 안에서 불을 쬐려한다고 야단을 쳤다. 그리고는 바깥에서 불을 지펴 놓고 쬐라고 하면서 장작을 패게 했다.
다음날 아침 장사는 손으로 장작을 패고 있는 초립동이를 보았다. 이에 놀란 장사는 자기보다 힘이 더 센 초립동이에게
“몰라봐서 미안하다”
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초립동이는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장사를 꾸짖으며 섬돌 위에 내던졌다.
그래서 장사는 꼽추가 되었다.
< 대진대 국문과 제2차 답사 자료집(군내면), 1993. 10. >


(2) 진짜 장사

개성 땅에 팥을 한 섬씩이나 드는 장사 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힘을 자랑하고 으시대며 안성 땅으로 구경을 떠났다.
이윽고 그들이 안성에 닿아 보니 그 날이 마침 장날이었다. 그런데 한 청년이 행패를 부리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혼을 내어 주려고 뒤따라 갔다. 그 청년은 생강 가게로 들어가더니 생강이 썩었나 어떤가를 살펴보려고 집어 문질렀다. 그랬더니, 생강이 그만 가루가 되어 버렸다.
세 사람은 그가 장사임을 알았기에 다시 따라가 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연죽가게로 가서 설대 몇 개를 집으니 한꺼번에 부러졌다. 이 광경을 본 가게 주인이 화가 나서 그 장사의 팔을 잡아 비트니, 팔이 그 장사의 몸을 한 바퀴 휘감았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 본 세 사람은 연죽 장수가 진짜 장사임을 알았기에, 그와 의형제를 맺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연죽 장수는 그 청을 거절하며,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래도 세 사람은 그와 의형제를 맺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그런데 이 때였다. 웬 중 하나가 머리 위를 날아가지 않는가? 세 사람은 기겁을 하고는 연죽 장수 말대로 집으로 돌아가는데, 한 초립동이 참나무를 뽑아 길 위에 눕혀 놓고는 씩씩거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하도 이상해서 그 초립동이에게 왜 그러느냐고 연유를 물어 보았다.
“예, 제가 내자를 데리고 근친을 가는데, 웬 중놈이 제 내자를 탐내기에 이 참나무로 길을 막았지요. 그리고 그 놈의 발목을 잡아 내동댕이쳤는데, 혹시 그 놈이 날아가는 걸 보지 못했습니까?”
세 사람은 모두 입을 벌리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풋내기 힘이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그 뒤부터는 절대로 힘자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抱川郡誌, 1984. >


(3) 담력 센 할아버지

마을에 양씨 성을 가진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당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던 때였으나 양씨 할아버지 네는 부자였다. 산골짜기에 있는 넓은 밭에는 메밀을 심었다. 그때는 벼수확 만으로는 양식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당작을 했던 시기라 밀이나 메밀, 귀리 같은 것을 심어 양식에 보태었다. 양씨 할아버지네도 마찬가지로 메밀을 심었는데 메밀을 칠월에 갈았다.
어느 날 메밀을 갈러 가는데 호랑이가 노루를 잡아서 바위돌로 끌고 올라가는 것을 발견하였다. 담력이 센 양씨 할아버지는 그 길로 호랑이를 쫓아 올라가서
“야 이놈아 너만 먹느냐, 나하고 같이 먹자.”
고 호통을 쳤다. 이윽고 호랑이가 바위 위에 노루를 내려놓고 막 깨물려는 것을 본 할아버지는 그 옆으로 다가가 노루 다리를 잡고 잡아당겼다.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워낙 담력이 센 할아버지는 계속 호랑이와 노루를 가지고 씨름하였다. 결국 호랑이도 지쳐 슬그머니 노루를 놓고 가버렸다.
양씨 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그 노루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그 호랑이가 한 일주일 동안 할아버지 집 근처를 배회하여서 온 식구가 그간 벌벌 떨며 지냈다 한다.
< 이순용, 70세, 남, 창수면 가양리, 1998. 9. 24. >


(4) 용감한 아버지

옛날에 한 아버지가 시집간 딸을 보려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걸어서 하루 종일 가도 딸네 집에 당도할 수가 없었다.
저녁때가 되어 지쳐서 살펴보니, 산에서 화전해서 먹고 사는 집이 한 채 있었다. 아버지가 그 집으로 들어가 보니, 색시가 하나 울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색시의 가족은 호랑이에게 모두 잡아먹히고, 오늘은 그 색시가 잡아먹힐 차례라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궁이에 숯불을 피워 봉양꼬챙이를 달구어 놓고는 기다렸다.
잠시 후 호랑이가 와서 그 색시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이 때 아버지는 거적문을 잡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계속 아가리를 벌리며 들어오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불에 달궈놓은 봉양꼬챙이를 들어 호랑이의 입을 찔렀다. 결국 호랑이는 마당에 쓰러져 죽었고, 그 색시는 잡아먹히지 않게 되었다.
< 유월로, 77세, 남, 일동면 유동2리, 1995. 9. 4. >


(5) 용기있는 총각

서른 살 총각이 무과 급제의 꿈을 안고 서울로 갔다.
과거 날이 되어 과장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다. 드디어 과거가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순서대로 활쏘기를 하였다.
가난한 그 총각은 미처 활을 준비하지 못해 다른 선비에게 활을 빌려 달라고 했으나, 그 선비는 활을 빌려주지 않았다. 화가 난 총각은 선비의 활을 꺾어 버렸고, 그 바람에 싸움이 일어났다.
임금님이 싸움하는 것을 보고 총각과 선비를 불렀다. 자초지종을 들은 임금님은 그의 용기를 가상히 여겨 다른 선비로 하여금 총각에게 활을 빌려주게 하였다.
활을 빌려 무과를 칠 수 있게 된 청년은 과녁 가운데를 정확히 맞추어서 무과에 급제했다.
< 대진대 국문과 제2차 답사 자료집(군내면), 1993.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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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1) 못된 사위

옛날에 장모가 외손주를 업고 우물가로 나갔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 장모는 아이를 달래려고 우물에 사람이 비치는 것을 보여 주려다가 아이를 물 속에 빠뜨렸다. 장모는 급하게 사위를 불렀다. 사위는 죽은 아이를 침착하게 끌어올리고는 장모에게 업고 따라오게 했다.
나지막한 야산에 이르자 사위는 아기의 묘를 파고, 그 옆에 큰 묘도 함께 팠다. 장모는 그 큰 묘가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그 묘에 누웠다.
사위가 흙을 덮고 산을 내려오려 하자 하늘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쳤고, 벼락을 맞은 사위는 몸의 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집에서 아기를 업고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시지 않는 것을 걱정하던 딸은, 어머니를 찾으러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을에서 어머니가 보이지 않자, ‘아기에게 산딸기를 따주려고 뒷산에 갔나’하고 뒷산 쪽으로 가보았다.
평소 다니던 길가에 처음 보는 두 개의 무덤이 생긴 것을 이상히 여긴 딸은 무덤 쪽으로 가 보았다. 이 때 무덤 속에서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이에 놀란 딸이 큰 무덤을 파보니 자기 어머니가 그 안에 있었다. 어머니는 다행히 아직 죽지 않았던 것이다. 딸은 어머니를 업고 집으로 와서는 정성껏 간호하여 살려냈다.
사위는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을에서 쫓겨났고 땅에 떨어진 더러운 것을 집어먹으며 거지처럼 살았다.
< 대진대 국문과 제2차 답사 자료집(군내면), 1993. 10. >

(2) 허가 받은 도둑

옛날에 도둑질을 허가 받을 정도로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잡히자 임금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궁으로 데려오게 하여 그에게 물었다.
“너는 도둑질에 그렇게 자신 있느냐?”
“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 시키는 대로 못하면 죽을 줄 알아라.”
임금은 도둑에게 교회에 가서 목사를 훔쳐와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서는 임금은 목사와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둑이 갈 것이니 자지 말고 지키라’고 미리 말해 놓았다.
그러나 도둑은 납치하러 가기로 약속한 날 잠만 자고 가지 않았다. 임금이 ‘어제 왜 안 갔냐’고 물었더니, ‘상을 당해서 못 갔다’고 했다. 다음날에도 ‘엊저녁에 자식이 죽었다’고 하면서 가지 않았다.
삼일째 되는 날 목사는 삼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해서 잠이 깊게 들었다. 도둑은 기어다니는 게를 사서 불을 붙인 막대기를 몸은 꽂아 공동묘지에 갖다 놓았다. 게는 공동묘지를 ‘뻘뻘’ 기어다녔다.
도둑은 교회에 들어가서 잠들어 있는 목사를 깨웠다.
“고개를 들어서 저기를 봐라.”
목사는 비몽사몽간이라 정신이 없어서 기도만 올리고 있었다. 도둑은
“공동묘지를 쳐다봐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저렇게 너를 환영하고 있다.”
라고 말하며, 가지고 간 자루 속에다 목사를 집어넣었다.
자루를 메고 나오려니까, 밖에 마침 비둘기가 있었다. 비둘기가 ‘구구’하니까 도둑은,
“저게 너를 환영하는 소리다. 천당에서 환영하는 소리니까 빨리 가자.”
라고 들쳐 메고 임금이 있는 궁으로 갔다.
그의 도둑질 능력에 놀란 임금은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그 사람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 박종국, 72세, 남, 이동면 장암4리, 1995. 9. 14. >


(3) 버릇없는 아이

옛날에 노부부가 시골에서 살았는데, 그들에게는 아기가 없었다.
노부부는 신령님께 간절히 기도를 해서 옥동자를 낳았고 그 아이는 너무 귀여웠다. 노부부 두 식구만 살다가 재롱동이가 하나 생겨서 밤마다 오손도손 웃음꽃을 피웠다.
아이는 점점 자라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노부부가 시키는 대로 했다. 엄마가
“저기 아빠한테 가서 따귀 한 대 때리고 와라”
하니까 그 아들은 시키는 대로 ‘찰싹’ 때리고 왔다. 그것이 나쁜 행동이라고 가르치지 않자 그 아이는 여덟 살이 넘어서도 계속 노부부의 뺨을 때렸다. 그것을 누구한테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관가에 그 얘기가 들어갔다. 관가에서 붙잡아다가 혼을 내는데 알고 보니 아이는 순진했을 뿐이지,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원님은 가두지 않고 내보내 주면서,
“저기 있는 집에 가면 극진한 효자가 있으니 너는 그 효자한테 가서 좀 배워라.”
하고는 그 효자에게 보냈다.
아이가 그 곳에 가서 보니 효자는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아이가 슬그머니 방에서 나가 효자를 따라가서 효자가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아버지 옷을 입는 것을 보았다. 겨울이어서 아버지가 일어나셔서 옷을 입으려면 차가울까봐 먼저 옷을 입어서 따뜻하게 데워 놓으려고 입는 것인데, 아이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는 ‘다 배웠다’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는데, 배운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버지 옷을 ‘떡’ 하니 입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께서 일어나시면 옷을 데워났다며 드려야 하는데, 그 효자 집에서는 옷을 도로 드리는 것은 보지 못해서 아버지가 일어나셨어도 계속 그 옷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고 일어나 보니 아들이 자기 옷을 전부 입고 앉아 있었다. 이제는 못 참겠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화가 나서,
“에이 이 후레자식 녀석, 어디 어른의 옷을 입었느냐?”
하며 큰 호통을 쳤다.
이 이야기는 사람이 배운다고 하는 것이 무한정 끝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 아버지가 배운 사람이고, 자식 또한 공부를 시켰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효자는 그 하늘이 낸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뭔가 아는 것이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 김영수, 67세, 남, 영중면 양문4리, 1997. 4. 8. >


(4) 사냥꾼 만석이

옛날 경기도 포천의 기피울에 만석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만석이는 마음씨가 착하고 정직하여 온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농토는 물론, 집도 변변한 것을 갖추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남의 농사를 돌보아 주기도 하고 날품팔이로 그날 그날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뒷산에서 풀을 한짐 해서 지고 내려오던 만석이는 움푹 팬 함정에서 너구리 한 마리가 빠진 채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착한 만석이는 살려 주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봉양하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작대기로 때려잡아 가지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만석이는 다음 장날에 너구리를 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하얀 쌀 한 말을 사다가 고깃국을 끓여 어머니를 대접하였더니 어머니도 맛있게 드셨습니다.
이날부터 만석이는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싸릿대로 올무를 만들어서 토끼를 잡기도 하고 함정을 만들어 노루나 사슴도 잡았습니다. 이 소문이 멀리까지 퍼지자 산짐승의 고기를 사러 기피울의 만석이네 집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산돼지도 잡고 불곰도 잡았습니다. 만석이는 산짐승을 많이 잡아, 고기나 가죽을 팔아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만석이를 찾아왔습니다.
“여보게, 만석이! 자네가 산짐승을 잘 잡아서 덕분에 고기는 잘 얻어 먹네마는 마구 산짐승을 잡아서 재산을 만들다니. 너무하는 게 아닌가?”
“뭐라고요? 그래 내가 산짐승을 잡아 부자가 되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프단 말이오?”
벌써 만석이의 얼굴은 옛날의 착하고 마음씨 고운 만석이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희고 달덩이 같던 둥근 얼굴은 일그러지고, 이는 뻐드러진 채 검은 검버섯이 얼굴에 끼고 머리는 드문드문 빠져서 마치 저승사자 같다고들 하였습니다.
“산짐승을 너무 많이 잡아먹더니 귀신 꼴이 다된 것 같은데…….”
“아니야, 산짐승을 마구 죽이니까 산짐승 저승사자가 되었지 뭐야?”
마을 사람들은 입을 비죽거리면서 만석이를 욕하였습니다.
사냥도 겨울철에 몇 마리 잡아서 팔면 몰라도, 사시사철 닥치는 대로 산짐승을 잡아대는 만석이는 정말 산신령님의 노하심을 살 것이라는 얘기가 마을 안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산짐승 사냥에 미친 만석이는 봄이 되어 짐승들이 새끼를 낳는 철인데도 마구 사냥을 하였습니다.
보다못한 노인들이 만석이를 불러다 마을 사랑방에 앉혀 놓고는 점잖게 훈계를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 하여 생물의 목숨을 죽이는 데에도 가려서 해야 하는데, 생물이 새로 새끼를 낳고 알을 까는 봄에도 사냥을 한단 말인가? 이제 그만큼 사냥을 하여 집도 장만하고 농토도 있으니 농사나 부지런히 짓고 늙은 어머니를 편히 모시도록 하게.”
아무 말이 없이 만석이는 동네 사랑방을 나오더니, 그 큰 주먹으로 사랑방 노인들을 향해 주먹질을 하며 알아듣기 힘든 욕설을 중얼대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만석이가 사람이 아닌 짐승이자 악귀가 되었다고들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 날 저녁, 만석이 어머니의 꿈에 산신령님이 나타나 큰 소리로 호령을 하였습니다.
“만석이 어멈 듣거라! 네 아들이 함부로 우리 산식구들을 잡아간다면 산신령인 나도 네 아들 만석이를 잡아갈 것이다.”
너무나도 놀랍고도 무서운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어머니에게서 전해들은 만석이는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코웃음만 치는 것이었습니다.
사냥꾼에다 마음씨까지 심술궂다는 소문이 돌자, 노총각인 만석이에게 시집을 오겠다는 색시가 없었습니다.
서른 살이 넘은 노총각 만석이는 총각 귀신인 몽달귀신이 되어 호랑이에게 물려 갈 것이라는 소문까지 어느덧 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석이는 산짐승 가죽을 멀리 서울까지 내다 팔고, 곰의 쓸개는 비싼 약재로 팔고, 고기는 고기대로 팔아 점점 부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자연 보호법에 의해 큰 벌을 받을 것이었으나, 옛날에는 아마도 벌을 줄 만한 원님도 안 계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함박눈이 내리던 날, 만석이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쇠창을 들고 망태기를 지고는 깊은 산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후 몇 날, 아니 몇 주일이 지나도 만석이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산토끼 몇 마리와 곰 한 마리쯤은 잡아 가지고 산에서 내려올 것을 기다리던 만석이 어머니도 꽤 여러날이 지나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만석이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만석이를 찾아 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만석이를 찾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석이의 소행은 괘씸했지만 홀어머니의 눈물어린 간곡한 호소에는 마을 사람들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다섯 명씩 조를 짜서 만석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큰골에도 닥박골에도 원자박골에도 하늘봉 밑에도 만석이는 없었습니다. 지쳐서 집으로 돌아온 마을 사람들은 다시 그 이튿날 새벽부터 서둘러 산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허사였습니다.
“산신령님이 데려갔을 거야.”
“아니야, 호랑이에게 물려 갔을 거야.”
“곰굴에 잘못 들어갔다가 갇힌 모양이지?”
제각기 한 마디씩 하였습니다.
그나마 시체라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마을 사람들은 온통 산을 누볐습니다.
만석이가 산에 오른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던 어느 날, 산골짜기 함정에서 만석이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석이가 빠져 죽은 함정이, 바로 얼마 전 만석이가 큰 호랑이를 잡겠다고 깊이 파 놓은 함정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모두 혀를 내둘렀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죽은 함정에 빠진 만석이의 시체가 두 손을 합장하고 무릎을 꿇은 채 죽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마도 죽은 순간, 그 동안 많은 짐승들을 함부로 잡은 자기의 잘못을 산신령님께 빌고 죽었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창종,『못난이의 귀향』, 한국독서지도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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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