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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權縉)ㆍ1572(선조25)~1624(인조2)


 

 

문신으로 자는 운경(雲卿), 호는 수은(睡隱), 본관은 안동이다.
양촌 권근(陽村 權近)의 8대 손이고, 임진란 때 금산군수(金山郡守)로서 의병을 일으키어 격전하다가 순절안 충민공 종(忠愍公 悰)의 손이며, 효자로 이름 높은 현(睍)의 자이다.
1597년(선조3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599년(선조32)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이 되고 1600년(선조33) 홍문관 부수찬(副修撰)이 되었다가 한달 후에 수찬으로 진급하였다.
1601년(선조34) 형조정랑(刑曹正郞)이 되었고, 1602년(선조35)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에 이어서 집의(執義)가 되었다.
1603년(선조36) 홍문관 교리(弘文館 校理), 1604년(선조37) 사간원 사간(司諫院 司諫), 1606년(선조39) 대동찰방(大同察訪)을 지냈다. 1608년(선조41)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경주부윤(慶州府尹)이 되었다.
1613년(광해군5)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 1615년(광해7) 우승지(右承旨)에 임명되었고 이어서 도승지(都承旨)로 승차하였다. 1616년(광해8) 수원부사(水原府使)가 되었으며 품계는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다.
1617년(광해9)에는 함경도 관찰사가 되어 외직으로 나갔다.
1621년(광해13) 3월에는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되었고, 동년 4월에는 의정부 우참찬(議政府 右參贊)으로 전보되었다.
1622년(광해군14) 8월에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가 되었고, 동년 12월에는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었다.
권진은 성품이 강직하여 당대의 권신(權臣) 정인홍(鄭仁弘) 이이첨(李爾瞻) 등에게 아부하지 않아 수차 탄핵을 받았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자 대신 고관들이 모두 도주 했을 때 반정주동 인물 김류(金?) 등의 추천을 받고 조정에 불리어 대궐을 호위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으나 그 후 그의 유능함을 시기한 반정공신들의 무고로 양산(梁山)에 유배되었다가 그 이듬해 1624년 병졸(病卒)하였다.
묘는 소흘읍 고모리에 있다.
학문도 높았고 서예에도 능하여 사림(士林)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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