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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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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선(柳仁善)ㆍ1542(성종23)~

 

   이 고장의 망족(望族)인 문화류씨로 자는 공숙(公叔)이고, 증 좌찬성 연(贈 左贊成 演)의 아들이다. 영의정 순(洵)의 종자이며 영의정 문정공 전의 백부이다.
1542년(성종23) 포천 자작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쓰며 천성이 어질고 착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을 정성을 다하여 섬기고 부모님 상을 당하여서는 묘 앞에 초려를 짓고 3년 동안 시묘를 하여 그 효성이 널리 알려져 칭송이 자자하였다. 아우 은선(恩善-처사), 예선(禮善-현령 문선부원군 증 영의정), 지선(智善-참판), 정선(貞善-우후) 오형제가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 우애가 돈독하여 모두 부러워하였다.

-류인선선생 효우비-


조정에서 학식과 덕망을 갖춘 어진 사람을 천거하라는 영이 내려지자 1535년(중종30) 경기 관찰사 윤은필이 경기도내에서 학덕을 겸비한 이름난 효자는 유인선이라고 장계를 올렸고 예조판서 정옥형(丁玉亨)도 류인선을 이름난 효자요 형제간 우애가 가장 돈독한 인물이라고 추천하였다. 유인선 선생이 그만큼 알려졌던 것이다.
유일(遺逸-추천에 의하여 임명되는 관직)로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1549년(명종5)에 효우정려문(孝友旌閭門)이 내려졌다.
보통 충신에게는 충신문, 효자에게는 효자문, 열녀에게는 열녀문이 세워지는 것이 상례인데 류인선 선생에게 효우(孝友)정려문이 내려진 것은 특이하다.
그 까닭은 유인선 선생이 효자일 뿐 아니라 형제간에 우애(友愛)가 돈독하였기에 효자와 우애를 합쳐서 효우정려라 한 것이다. 지금은 정려문은 없어졌고 효우비만 남아있어 유인선 선생의 위적을 회상케 하고 있다.
효우비는 자작리에 있는데 전면은 영조조때 영의정 이의현(李宜顯)이 짓고 예조참판 김상옥(金相玉)이 썼으며 뒷면은 봉래 양사언 선생이 짓고 썼다고 전해진다.
이상국(李相國) 의현(宜顯)이 비에 찬하여 이르기를
장공백인(長公百忍) 장공이 백번이나 참아냄은
천고차칭(千古嗟稱) 천고에 칭송되는데
오류동문(五柳同門) 다섯명의 유씨형제 같이 살며
궐미가승(厥?加承) 그 아름다움을 가히 계승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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