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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근(金興根)ㆍ1796(정조20)~1870(고종7)


 

 

조선조말엽 안동김씨 70여년 세도(勢道)정치의 핵심인물의 한 사람으로, 영의정을 역임하고 치사(致仕-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는 것)후 일동면 수입리 웃 갈기에서 살았다.
자는 기경(起卿), 호는 유관(游觀), 본관은 안동, 참판 명순(明淳)의 아들이다. 노년에 갈기에서 살았기 때문에 “갈기 대신”이라고도 한다.
1825년(순조25)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이 되었다. 이어서 청환직(淸宦直)을 두루 거처 1835년(헌종1) 예조판서와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공조, 형조, 호조, 이조, 병조 등 6조 판서를 두루 거쳐 대사헌, 한성판윤, 의정부 참판(參判), 지경연(知經筵), 춘추관(春秋館), 돈녕부(敦寧府), 중추부(中樞府), 의금부사(義禁府事) 등을 지내고 대광보국대부에 승차하여서는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판중추(判中樞), 영중추(領中樞), 영돈영(領敦寧), 실록총재관(實錄總裁官) 등을 지내고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갈기 대신은 순조(純祖), 익종(翼宗), 헌종(憲宗), 철종(哲宗) 사조(四朝)에 걸쳐 현직(顯職)을 아니 거친 것이 거의 없었으며 재산 또한 천석꾼으로 부귀를 겸전했었다.
아버지는 종이품 참판이었고 아들(김병덕-약산대신) 또한 영의정이었다. 그는 관직생활이 순탄하였다. 재직 중 국란(國亂)도 없었고 질병도 없었던 행복한 사람이었다.
묘도 일동면 기산리 소야골 금주산(金珠山)에 있다.
시호(諡號)는 충문공(忠文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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